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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그때의 터줏대감은 지금 어디에…



거대한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들어선 서울 황학동 일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먹으면 요강이 깨진다'는 정체 모를 약을 파는 약장수와 도대체 쓸 데가 있을까 싶은 고물을 파는 상인, 철 지난 성인비디오와 신용불량자도 개통 가능하다는 핸드폰을 어지럽게 진열해놓고 파는 이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 공사와 함께 시작된 주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황학동 골동품 시장은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두고 자연하천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을 재개발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는 이들은 없었다.

황학동 일대를 답사하다 만난 '민속골동'이라는 골동품 전문상점의 김정남 사장은 지금도 기억에 남다. 30년째 만물상을 운영해오고 있던 그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박회사에서 일하다 1972년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황학동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학창시절 역사를 좋아했던 그는 미술책과 역사책들을 섭렵하며 '대학교수'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고서적과 골동품 연구에 몰두했고 우여곡절 끝에 내로라 하는 골동품 전문상점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때의 김 사장은 이제 황학동에 없다. 그의 가게가 있던 건물도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청계천 상인들이 걱정했듯 청계천 복원공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업은 결과적으로 청계천 주변부 재개발사업으로 판명났고, 그때까지 존재했던 서민들의 공간을 앗아가 버렸다.

물론 근처에 도깨비시장이 다시 들어섰고 청계천 너머 동묘 근처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는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번듯한 건물에 들어가 장사를 하는 이들은 훨씬 적어보인다.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상가 임대료가 덩달아 상승한 탓이다.

김 사장이 진열장 속 깊은 곳에서 꺼내 보여준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세월 가면 잊어질까. 세월아 말 좀 해다오. 얼마나 고달프고 슬픈 날이 많은지. 배가 고파 울고, 외로워 고독하여 울고, 무서워서 떨고, 추워서 떨고, 괄세 받아 북받치던 옛날이 곧 오늘이구나…."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서민들의 삶은 그제나 저제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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