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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인간의 조건

김민웅



"첸과 함께 뛰어나간다. 가방에 감추어둔 폭탄을 하나 꺼내 던진다. 응당 그래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생활에서는 뜻 있는 일이라곤 오직 그것뿐이다. 이제 서른 일곱 살. 아마 앞으로 30년은 더 살겠지. 살다니, 어떻게 산단 말인가? 가게에 쌓인 이 레코드를 팔아서? 그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루 위쉬안과 비참한 생활을 같이 나누면서?"

에멜리크는, 장개석을 암살할 테러를 준비하다 몸을 숨기러 온 동지 첸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어느 사내에게 팔렸다가 버려진 중국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그다. 바로 그 아내와 자기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에멜리크는 이내 후회의 급류에 휩싸인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27년 3월, 상해 폭동이 일어나고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의 야만적인 진압이 광풍처럼 소용돌이친다. 그 와중에 테러리스트, 지식인, 상인, 관료, 그리고 여러 여인들이 서로 뒤엉킨 채 운명의 계곡으로 빠져든다. 이 무대에는 중국인만이 아니라 벨기에인, 러시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그리고 프랑스 남자와 일본여자의 혼혈아가 각자의 고뇌를 끌어안고 중국 혁명의 이름 없는 주인공들이 된다.

앙드레 말로를 세계적인 작가로 알리게 된 이 소설은 그가 겨우 서른이었을 때 쓴 작품이라는 것에 우선 놀라게 되고, 당시 상해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변의 역사를 이토록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놓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이 어디에서 희망을 구했을까 하는 질문이다.

폭탄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이미 폭탄이 터졌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면 더욱 곤란하다. 희생자들만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인물들은 모두 아프게 소멸하고 만다. 인간이, 연기(煙氣)가 되는 슬픔이다.

절망이 출구를 완강하게 가로막고 안개가 거리를 점령군처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빛이 관통하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런데 언제나 폭탄을 요구한다. 인간이 겪는 고통에 귀가 멀고 눈이 어두운 마음이 첸이 던진 폭발물의 진정한 목표다. 존엄한 삶의 조건은 그렇게 태어난다. 이건, 결코 테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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